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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북.4>고문에 의한 허위 진술.. 지역 공동체 파괴
2022-08-30
박성준 기자 [ yes@g1tv.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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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광부와 주민들을 폭도로 규정한 계엄군의 만행은 고문과 폭행 만이 아니었습니다.
고문을 견디기 힘들었던 광부들은 동료와 이웃을 주동자라며 허위 진술을 해야만 했는데요.
그 과정에서 지역 공동체는 철저히 파괴됐습니다.
이어서 박성준 기자입니다.
◀ E F F ▶
"아이고 우리 아버지 이름을 댔어요. 하도 이름을 대라고 해가지고 안 대면 자꾸 구타를 하니까 아버지 이름을 댔어요."
[리포터]
계엄군에 의해 자행된 반인륜적인 가혹행위와 모진 고문.
당시 35살 광부 이완형 씨는 배후 세력을 묻는 계엄군의 강압에 못 이겨 꺼내서는 안 될 자신의 아버지 이름 세 글자를 댔습니다.
살기 위한 허위 진술이었습니다.
"막 짓이겨요. 얼마나 때리는지 정말 악질이에요. 한두 사람 (때리는 게) 아니에요. 어휴 참."
[리포터]
계엄군에게 강제로 끌려가 조사를 받은 광부와 가족들은,
더 고문을 당하지 않기 위해선 또 다른 누군가의 이름을 대야만 했습니다.
"가담했느냐 그것을 처음에는 아니라고 얘기를 했더니 매에 못 이겨 가지고 정말 너무 고통스러워서.."
[리포터]
칸칸이 막힌 조사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밤낮으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많이는 못 봐요. 서로 상면을 안 시키는 거예요. 누가 잡혀오고 누가 잡혀왔다는 거는 모릅니다."
[리포터]
운 좋게 풀려나도 폭행 사실을 알리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다는 계엄군의 협박에 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렇게 주민들은 서로 말도 못 꺼내고, 수십년 침묵하며 살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지역사회, 공동체는 철저히 파괴됐습니다.
견디지 못하고 사북을 떠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아 여기는 살 곳이 못 되는구나. 그래서 돈 번다는 일념을 버리고 거기서 나오게 됐어요. 탄광 생활의 종지부를 찍었죠."
[리포터]
4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이 씨의 가슴속엔 아버지와 함께 남은 응어리가 하나 더 있습니다.
고문에 못 이겨 집회 현장에 있었다고 무심코 내뱉었던 동료의 이름.
"글쎄 저를 원망할 이유는 되죠. 그러나 내가 이해를 못 시킨 것이 지금 후회스러워요."
[리포터]
상처만 남은 사북.
당시 광부에게 사북은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사북이라는 곳은 한마디로 얘기해서 지옥이죠. 정말 너무 무서운 곳이에요."
"내 젊음을 빼앗아간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에요."
[리포터]
G1 뉴스 박성준입니다.
*본 보도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광부와 주민들을 폭도로 규정한 계엄군의 만행은 고문과 폭행 만이 아니었습니다.
고문을 견디기 힘들었던 광부들은 동료와 이웃을 주동자라며 허위 진술을 해야만 했는데요.
그 과정에서 지역 공동체는 철저히 파괴됐습니다.
이어서 박성준 기자입니다.
◀ E F F ▶
"아이고 우리 아버지 이름을 댔어요. 하도 이름을 대라고 해가지고 안 대면 자꾸 구타를 하니까 아버지 이름을 댔어요."
[리포터]
계엄군에 의해 자행된 반인륜적인 가혹행위와 모진 고문.
당시 35살 광부 이완형 씨는 배후 세력을 묻는 계엄군의 강압에 못 이겨 꺼내서는 안 될 자신의 아버지 이름 세 글자를 댔습니다.
살기 위한 허위 진술이었습니다.
"막 짓이겨요. 얼마나 때리는지 정말 악질이에요. 한두 사람 (때리는 게) 아니에요. 어휴 참."
[리포터]
계엄군에게 강제로 끌려가 조사를 받은 광부와 가족들은,
더 고문을 당하지 않기 위해선 또 다른 누군가의 이름을 대야만 했습니다.
"가담했느냐 그것을 처음에는 아니라고 얘기를 했더니 매에 못 이겨 가지고 정말 너무 고통스러워서.."
[리포터]
칸칸이 막힌 조사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밤낮으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많이는 못 봐요. 서로 상면을 안 시키는 거예요. 누가 잡혀오고 누가 잡혀왔다는 거는 모릅니다."
[리포터]
운 좋게 풀려나도 폭행 사실을 알리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다는 계엄군의 협박에 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렇게 주민들은 서로 말도 못 꺼내고, 수십년 침묵하며 살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지역사회, 공동체는 철저히 파괴됐습니다.
견디지 못하고 사북을 떠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아 여기는 살 곳이 못 되는구나. 그래서 돈 번다는 일념을 버리고 거기서 나오게 됐어요. 탄광 생활의 종지부를 찍었죠."
[리포터]
4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이 씨의 가슴속엔 아버지와 함께 남은 응어리가 하나 더 있습니다.
고문에 못 이겨 집회 현장에 있었다고 무심코 내뱉었던 동료의 이름.
"글쎄 저를 원망할 이유는 되죠. 그러나 내가 이해를 못 시킨 것이 지금 후회스러워요."
[리포터]
상처만 남은 사북.
당시 광부에게 사북은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사북이라는 곳은 한마디로 얘기해서 지옥이죠. 정말 너무 무서운 곳이에요."
"내 젊음을 빼앗아간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에요."
[리포터]
G1 뉴스 박성준입니다.
*본 보도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박성준 기자 yes@g1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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