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 회
2016-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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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통선 최북단에 위치한 철원군 근북면 ‘유곡리 마을’은
2006년 중선거구제가 실시되기 이전까지 유권자 146명의 ‘전국 최소 선거구’로 유명세를 탔다.
면(面)도 아닌 리(理)에서 군의원 1명을 선출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유곡리가 최소선거구로 탄생한 배경에는 전쟁의 상흔이 자리 잡고 있다.
근북면은 원래 38선 이북의 김화군 소속으로 한국전쟁 이후 근북면 9개 마을 중 유곡리만이 유일하게 남쪽에 남게 됐다.
그런데 근북면을 행정구역으로 남겨둔 이유는 통일 이후 이북과 선거구를 통합할 때를 대비해야 한다는 명분 때문이었다.
60세대의 작은 마을에서 세 명의 후보자가 나오다보니 더욱 치열했던 1991년 첫 지방의회 선거.
단 7표 차이로 초대 군의원이 선발되는데..
통일의 그날을 위해 근북면을 대표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던 유곡리마을의 선거.
유곡리 마을주민들에게 당시 선거를 통해 통일을 기다리는 마음과 민통선마을에 대한 바람 등을 들어보자.
[DMZ스토리 209부 통일을 기다리는 초미니선거구]
민통선마을의 초미니 선거구였던 유곡리마을, 그곳이 초미니 선거구로 존재했던 이유를 알아보고 당시 주민들의 바람은 어떠했는지 살펴보자.
2006년 중선거구제가 실시되기 이전까지 유권자 146명의 ‘전국 최소 선거구’로 유명세를 탔다.
면(面)도 아닌 리(理)에서 군의원 1명을 선출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유곡리가 최소선거구로 탄생한 배경에는 전쟁의 상흔이 자리 잡고 있다.
근북면은 원래 38선 이북의 김화군 소속으로 한국전쟁 이후 근북면 9개 마을 중 유곡리만이 유일하게 남쪽에 남게 됐다.
그런데 근북면을 행정구역으로 남겨둔 이유는 통일 이후 이북과 선거구를 통합할 때를 대비해야 한다는 명분 때문이었다.
60세대의 작은 마을에서 세 명의 후보자가 나오다보니 더욱 치열했던 1991년 첫 지방의회 선거.
단 7표 차이로 초대 군의원이 선발되는데..
통일의 그날을 위해 근북면을 대표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던 유곡리마을의 선거.
유곡리 마을주민들에게 당시 선거를 통해 통일을 기다리는 마음과 민통선마을에 대한 바람 등을 들어보자.
[DMZ스토리 209부 통일을 기다리는 초미니선거구]
민통선마을의 초미니 선거구였던 유곡리마을, 그곳이 초미니 선거구로 존재했던 이유를 알아보고 당시 주민들의 바람은 어떠했는지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