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 회
2016-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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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민(徙民) : 나라의 정책으로 타지역의 주민을 이주시킴
철원은 사민의 땅이다.
궁예가 태봉국도성을 건설할 때 청주의 호족 1천 호를 이주시킨 이래 1천여 역사를 이어져온 사민의 역사..
서기 903년 후삼국시대, 궁예는 철원을 수도로 잡고 청주의 백성 1천 호를 사민 시키는 정책을 취한다.
1만여 명의 청주인들의 마음을 철원으로 이끌었던 것은 궁예가 선포한 이상 국가 건설의 꿈 때문이었다.
유토피아를 찾아갔던 철원행, 그것은 1920년 일제강점기에도 이어진다.
일본인들이 철원평야에 농장을 개척하면서 평안도와 경상도 주민을 소작농으로 모집해
철원 동송읍 대위리와 장흥리에 평안촌과 장흥2리에 경상도촌이 세워졌다.
그리고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 그 철원평야에 또 다른 '사민사'가 쓰여졌다.
1959년부터 1980년까지 민통선 민간인 입주정책으로 인해
월하리, 관정리, 마현리, 대마리 등 14개의 민북마을이 형성된다...
[DMZ스토리 214부 사민(徙民)의 땅, 철원]
후삼국시대부터 한국전쟁 이후까지 계속된 ‘철원 사민의 역사’를 살펴보자.
철원은 사민의 땅이다.
궁예가 태봉국도성을 건설할 때 청주의 호족 1천 호를 이주시킨 이래 1천여 역사를 이어져온 사민의 역사..
서기 903년 후삼국시대, 궁예는 철원을 수도로 잡고 청주의 백성 1천 호를 사민 시키는 정책을 취한다.
1만여 명의 청주인들의 마음을 철원으로 이끌었던 것은 궁예가 선포한 이상 국가 건설의 꿈 때문이었다.
유토피아를 찾아갔던 철원행, 그것은 1920년 일제강점기에도 이어진다.
일본인들이 철원평야에 농장을 개척하면서 평안도와 경상도 주민을 소작농으로 모집해
철원 동송읍 대위리와 장흥리에 평안촌과 장흥2리에 경상도촌이 세워졌다.
그리고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 그 철원평야에 또 다른 '사민사'가 쓰여졌다.
1959년부터 1980년까지 민통선 민간인 입주정책으로 인해
월하리, 관정리, 마현리, 대마리 등 14개의 민북마을이 형성된다...
[DMZ스토리 214부 사민(徙民)의 땅, 철원]
후삼국시대부터 한국전쟁 이후까지 계속된 ‘철원 사민의 역사’를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