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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215부 한국戰 최초의 승리를 이끌다! -동락전투와 여교사-

    방송일 2016-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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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 발발 12일 만에 후퇴를 거듭하던 국군이 거둔 최초의 승전! 충청북도 충주의 '동락리 전투' 그 승전은 한 젊은 여교사의 목숨을 건 용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김재옥’ 교사는 당시 충주 동락국민학교에 새로 부임한 열아홉 살의 앳된 교사였다. 부임과 동시에 터진 전쟁으로 동락초등학교에 무장한 북한군이 들이닥쳤고, 김재옥 교사는 북한군에게 ‘국군이 철수하였다’고 말하며 북한군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김재옥 교사는 그들이 무장을 해제한 뒤 휴식을 취하는 틈을 타 국군이 주둔해있는 음성을 향해 4시간여를 달려 국군을 찾았다. 마침내 제6사단 7연대 2대대를 만난 김재옥 교사는 대대장 김종수 소령에게 북한군이 있는 위치를 알렸다. 적의 동태를 살펴 보고하라는 상부의 명령에 따라 644고지에 병력을 배치시켰던 김종수 대령, 김재옥 교사의 제보를 받은 그는 동락초등학교에서 쉬고 있던 북한군을 기습공격하게 되는데.. [DMZ스토리 215부 한국전 최초의 승리를 이끌다! -동락전투와 여교사-] 한국전쟁 최초의 승리 ‘동락전투’와 승전의 결정적 역할을 했던 민간인 ‘여교사 김재옥’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 제214부 사민(徙民)의 땅, 철원

    방송일 2016-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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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민(徙民) : 나라의 정책으로 타지역의 주민을 이주시킴 철원은 사민의 땅이다. 궁예가 태봉국도성을 건설할 때 청주의 호족 1천 호를 이주시킨 이래 1천여 역사를 이어져온 사민의 역사.. 서기 903년 후삼국시대, 궁예는 철원을 수도로 잡고 청주의 백성 1천 호를 사민 시키는 정책을 취한다. 1만여 명의 청주인들의 마음을 철원으로 이끌었던 것은 궁예가 선포한 이상 국가 건설의 꿈 때문이었다. 유토피아를 찾아갔던 철원행, 그것은 1920년 일제강점기에도 이어진다. 일본인들이 철원평야에 농장을 개척하면서 평안도와 경상도 주민을 소작농으로 모집해 철원 동송읍 대위리와 장흥리에 평안촌과 장흥2리에 경상도촌이 세워졌다. 그리고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 그 철원평야에 또 다른 '사민사'가 쓰여졌다. 1959년부터 1980년까지 민통선 민간인 입주정책으로 인해 월하리, 관정리, 마현리, 대마리 등 14개의 민북마을이 형성된다... [DMZ스토리 214부 사민(徙民)의 땅, 철원] 후삼국시대부터 한국전쟁 이후까지 계속된 ‘철원 사민의 역사’를 살펴보자.

  • 제213부 북위 37.5도, 그 섬에 아이들이 있었다

    방송일 2016-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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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1년 한국전쟁 당시 순양함 세인트폴(USS-73 St. Paul)호는 정찰대를 파견했다. 그들은 인천에 있는 ‘작약도’로 갔다. 그곳에는 40여 명의 고아들이 있었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작약도에 있던 고아원 ‘성육원’의 아이들은 방치되었다. 추위와 굶주림에 지쳐있던 고아들은 바닷가에 떠밀려온 음식들을 먹으며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세인트폴의 미군들은 군사작전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스무 명씩 조를 짜 두 달 간 작약도를 찾았다. 쌀과 통조림 등의 식량을 갖다 주고, 자신들의 군복으로 옷을 만들어 입히고 아픈 아이들을 치료해주었다. 그렇게 하기를 두 달 여.. 세인트폴 순양함의 임무가 바뀌면서 그들은 떠나야 했다. 이후 아이들은 다른 보육원으로 옮겨졌고 미군들이 다시 찾아간 작약도에는 빈 건물만이 남아있었다. 미국으로 돌아간 ‘에드윈 바르’ 당시 중위는 아이들을 무척이나 그리워했고 조선일보를 통해 2001년 50대가 된 당시 고아들 3명과 재회했다. 세인트폴의 미군들이 없었다면 작약도에 있었던 고아들은 모두 죽었을지도 모른다. 65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당시 작약도에 있었던 그들(김광훈, 장장영, 조기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DMZ스토리 213부 북위 37.5도 그 섬에 아이들이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순양함 세인트폴과 작약도 고아들의 감동실화를 들어보자.

  • 제212부 청년 만해의 수행길

    방송일 2016-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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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 겸 승려, 시인이었던 만해 한용운. 그리고 강원도 DMZ를 가로질렀던 그의 ‘수행길’. 만해 한용운은 1905년 ‘백담사’(강원도 인제군)에서 출가하여 1907년 ‘건봉사’(강원도 고성군)에서 최초로 선(禪) 수업을 성취했다. 이후 1908년 ‘유점사’(금강산에 있었던 절)에서 월하스님에게 화엄경을 수학했다. 강원도의 사찰과 인연이 깊었던 만해, 그러나 1950년, 만해의 수행길은 그가 바랬던 광복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의 참혹한 흔적 DMZ에 가로막혀 버렸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해 DMZ를 가로질렀던 그의 수행길을 따라 그가 꿈꿨던 세상과 불교를 통한 독립국가의 모습을 그려본다. [DMZ스토리 212부 청년 만해의 수행길] 강원도 백담사, 건봉사, 그리고 DMZ 넘어 금강산을 지나는 만해의 수행길에 남겨진 ‘만해의 정신’을 살펴보자.

  • 제211부 화가 우신출의 종군스케치

    방송일 2016-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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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 대신 그림을 통해 국군의 용감함과 전쟁의 참상을 전하려고 전쟁터로 향했다.” - 화가 우신출(1911~1991) 화가들이 기록한 한국전쟁, 그러나 위험한 전선에서 직접 목숨을 걸고 종군한 화가들은 많지 않았다. 국군에 의해 정식으로 ‘종군화가단’이 창설되기 이전, 우신출은 ‘문총구국대’에 들어가 종군화가로서 활동을 하게 되었다. 1950년 9월 28일부터 10월 20일까지 23일간 종군하며 ‘외금강 입구 온정리’, ‘종로1가에서’, ‘진군(동해)’ 등의 작품을 남겼다. 우신출은 떨어지는 포탄 속에서도 인제, 홍천, 춘천 등 38선 동부전선과 금강산의 아름다운 모습 등을 화폭에 담아냈다. 2012년 6월, 그의 동생 ‘우성하’는 우신출의 종군화 89점과 종군일기 6점을 전쟁기념관에 기증했다. 이후 우신출이 기록했던 한국전쟁의 참혹한 순간들은 역사에 길이 남을 유산이 되었다. [DMZ스토리 211부 화가 우신출의 종군스케치] 한국전쟁의 참상을 기록했던 우신출의 그림을 통해 38선 동부전선의 참혹했던 전시 상황을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