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7부 정전협정: 전투계속원칙
방송일 2014-10-25
전쟁을 끝내기 위한 회담을 시작하면서 미국 측이 내놓은 첫 번째 전제조건 “정전 합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전투는 계속될 것이다“ 정전협상을 진행하면서 전투를 계속한다는, 모순된 상황이 이후 2년 동안 한국전쟁을 이어갔다. 군사작전을 계속하는 것이 정전협상에 유리할 것으로 판단했던 양측. 미국이 먼저 제시를 하고 공산 측의 암묵적 동의로 유지되었던 전투원칙 한국전쟁이 소모전, 장기전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정전회담의 첫 번째 원칙 “회담을 하되 전투는 계속된다.” ‘일면 타격, 일면 회담’ 이라는 모순된 상황 속에 피아간의 2만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된 현장을 들여다본다.
제136부 [해외기획취재] 중국의 한국전쟁 기억 - 항미원조기념관
방송일 2014-10-18
한국전쟁의 4대 참전국은 한국, 북한, 미국, 중국이었다. 그중 중국의 참전한 계기와 배경. 그리고 오늘날까지 중국이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그들만의 왜곡된 시각. 한국전쟁을 보는 중국의 입장은 1950.6.25 ‘조선내전’이 시작되고 ‘조선내전’은 무승부로 끝났지만 2일 뒤 미국의 개입으로 전쟁의 성격은 국제전쟁으로 변한다. 4개월 뒤인 1950.10.25, 중국이 참전한 시점으로 한국전쟁을 ‘항미원조전쟁’으로 그들은 표기하고 있다. 항미원조전쟁, ‘중국이 미국에 대항하여 북한을 도와 치른 전쟁’이라는 뜻 그리고 그들이 전쟁을 보는 왜곡된 관점을 중국 단둥 ‘항미원조기념관’을 통해 전시하고 있다. 한국전쟁에 대한 지금까지 부각되지 않은 중국의 왜곡된 시각을 중국 ‘항미원조기념관’을 토대로 들여다본다.
제135부 정전협정: 제59조 실향사민조항
방송일 2014-10-11
6•25전쟁 당시 납북된 민간인 국군 포로 6만 명보다 많은 9만여 명으로 추정 이들의 송환을 위한 정전회담 결과물 정전협정 제59조 “1950년 6월 24일에 본 정전협정에 확정된 군사분계선 이남에 거주한 전체 사민에 대하여서는 그들이 귀향을 원한다면 그들이 군사분계선 이남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용하며 협조한다.” 그러나 정전협정 체결 이후 남으로 돌아온 납북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6•25전쟁 당시 민간인들이 북으로 납치된 배경과 결과. 그 내막을 들여다봅니다.
제134부 팔만대장경을 지킨 빨간 마후라
방송일 2014-10-04
평생 씻을 수 없는 아픔의 역사 6•25전쟁 전쟁은 전 국토의 황폐화와 많은 인명손실, 그리고 문화재 또한 피해가 있었다. 우리 문화유산 중 세계 문화유산으로까지 지정되어 가치를 인정받는 팔만대장경판. 그리고 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사찰 해인사. 과거에 많은 침략과 약탈에도 지켜진 해인사와 대장경판은 6•25전쟁 당시 또 한 번에 위기를 맞게 된다. 오늘날 그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소실될 위기에서 대장경판을 지켜낸 이야기. 그 이야기의 중심에는 한국 공군 '빨간 마후라'가 있다. 당시 빨치산이라 불리는 북한군 공비들이 팔만대장경이 있는 해인사에 집결. 경찰은 토벌 작전에 항공지원을 요청하게 되는데... 자신이 공격해야 하는 곳이 해인사임을 알게 된 공군 조종사 김영환 장군은 자신의 독자적인 판단으로 우리 문화유산을 지켜내는데... 그 자세한 이야기를 드려다 본다.
제133부 정전협정 : 송환거부포로의 90일
방송일 2014-09-27
6•25전쟁 정전협정을 통해 한반도에 총성은 멈추지만 보여지지 않은 소리 없는 전쟁 '포로 송환 문제' 포로협상 과정에서 가장 큰 쟁점이 됐던 송환거부 포로 관련 협상. 협상의 결과물인 '정전 후 90일 간 포로 설득작업' 정전 이후 DMZ가 된 장단역 근방 정전협정 체결 직후 이곳에 들어선 천막 80동. 포로협정에 합의한 '90일 설득기간'동안 송환거부 포로들이 머물 임시수용소. 송환거부 포로들에게 시작된 '제2의 포로생활' 그리고 양측의 회유와 설득. 그러나 이념적 승리를 위해 '선별된' 양측의 송환거부 포로들은 설득 자체를 완강히 거부하며 설득거부투쟁을 시작하는데... 2만 2천여 송환거부 포로들과 설득 과정 자체가 모순이었던 공산 측과 유엔 측이 벌인 한국전쟁의 마지막 싸움. 그 마지막 과정을 들여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