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부 6·25 최초의 美 여성종군기자, 마거리트 히긴스
방송일 2013-04-05
1950년 6월 27일부터 12월까지 6개월 동안 미군과 함께 전장을 누비며 6·25전쟁의 참상을 세계에 알린, 6·25 최초의 美 여성종군기자 '이브닝드레스보다 군복이 더 어울리는 여자' 美 일간지 ‘뉴욕 헤럴드 트리뷴’의 극동지국장, 마거리트 히긴스(Marguerite Higgins). 1950년 6월 28일 새벽, 서울의 저지선이 뚫리고... 뉴욕에 첫 기사로 송고한 ‘한강인도교 폭파사건’을 시작으로, 1951년 그녀를 여성 최초의 퓰리처상 수상자로 만들어 준 '인천상륙작전' 기사 등 그녀는 포화가 빗발치는 전투 현장 어느 곳이든 달려가 생생한 기사를 취재했다. 그녀가 한국에서의 6·25전쟁 취재 기간 중 여자라는 이유로 추방되었던 위기의 순간과 그녀가 목숨을 걸며 6개월 동안 6·25전쟁에서 보고 남긴 취재 루트를 따라가 보자.
제67부 포화 속의 기록자들, 종군기자 2편 - 1950년 12월, 흥남부두의 기적
방송일 2013-03-29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 불리는 세계 전쟁 사상 가장 큰 규모로 진행된 해상 철수, '흥남 철수 작전' 1950년 12월 15일부터 24일까지, 열흘 동안 함경남도 흥남항을 통해 10만여 명의 국군과 UN군 병력 1만 7천 대의 차량, 35만 톤의 군수물자 '철수 완료' 북한 피난민 10만여 명을 남쪽으로 안전하게 구출하는데 성공. 그리고... 눈보라 치는 흥남부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역사적인 사건을 두 눈으로 목격한 젊은 방송기자 한 사람. 그 당시 한 방송기자가 목격한 흥남 철수 작전의 생생한 취재기를 통해 철수 마지막 날 24일까지 흥남부두에서 벌어진 감동의 실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제66부 포화 속의 기록자들, 종군기자 1편 - 펜과 카메라의 전쟁
방송일 2013-03-22
'먹물은 쓰러져도 기자의 얼은 푸르다' 총과 칼이 아닌 펜과 카메라로 무장하고, 총알과 포탄이 빗발치는 전투 현장을 누비는 또 하나의 병사, '종군기자'. 6·25전쟁에서도 그들은 존재했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9시 30분 의 서울주재 특파원 잭 제임스 기자의 전쟁 발발 뉴스 최초 보도를 시작으로, 6·25전쟁의 첫 기사, 그리고 정전협정까지 3년간 남북한의 전쟁 소식을 알리기 위해 국내외 종군기자들은 위험 천만한 전투 현장의 일분일초를 전장의 군인들과 함께했다. 죽음을 무릅쓰고 전투현장을 누비며 ‘필탄’을 퍼부은 '종군기자'들... 6·25전쟁의 매순간을 오직 펜과 카메로에 의지한 채 포화 속을 누볐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제65부 민족의 물고기, 명태 2편 - 전사(戰史)에 담지 못한 명태전쟁
방송일 2013-03-15
11월, 북한한류를 따라 명태의 남하가 시작하는 계절. 금단의 바다, 바다의 군사분계선을 넘어 동해안으로 넘나드는 '명태들' 그 명태들의 유혹에 이끌려 북으로 북으로 향한 어민들. 그리고... 1957년 11월 9일 정오 강원도 고성 북쪽 바다, 명태 떼를 쫓아 북으로 향하던 어선들에게 일어난 첫 동해 어선 피랍 사건. 그 후 동해안 어선 납북 사건은 60년대 접어들면서 절정에 달하게 된다. 1967년 1월 19일, 북한의 납북을 막기 위해 강원도 거진 동쪽 해상에서 명태잡이 어선을 보호하던 해군 초계호위함 '당포함' 북한 해안포의 공격으로 침몰, 승조원 79명 중 39명이 사망하게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어로저지선의 잇단 축소와 정부의 명태 새끼 어획 승인. 그리고 그후... 이제는 자취를 감추어 버린 한민족의 물고기, '명태; 정전협정 이후 '명태'를 두고 벌어진 남북한이 치열하게 대립했던 그 당시로 돌아가보자.
제64부 민족의 물고기, 명태 1편-잃어버린 명태의 계절
방송일 2013-03-08
북위 38º 36' 바다의 군사분계선 NLL과 그 남쪽 6.5km에 또 하나 그어진, 북위 38º 33' 금단의 선 안에 완충의 바다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두 개의 선을 자유롭게 오고 가는 민족의 물고기, '명태' 과거 70년대, 우리나라 명태어획의 70% 강원도에서, 그 가운데 70%가 거진항으로 들어왔다. 겨울이 되면 선단을 이뤄 바다로 나가 매일 만선으로 귀항한 명태잡이배들. 부둣가에는 산봉우리처럼 명태가 쌓이고, 바닷가 덕장에는 배를 가른 명태가 한겨울을 장식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한 해 6천여 톤이 잡히던 명태는 1998년을 이후 1천여 톤으로 급감, 이제는 동해안에서 자취를 감춰버린 '명태'... 남과 북을 자유로이 오가며, 고성어민들의 삶과 애환이었던 그 당시의 '명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