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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TV인문학 이메일
작성일 2016-08-04 조회수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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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TV인문학> 3회 '고려 공양왕 최후의 행로'

<길 위의 TV인문학> 3회 '고려 공양왕 최후의 행로'


 비운의 고려 마지막 왕 공양왕. 조선 건국의 토대를 닦던 이성계 일파의 치밀한 사전 계략에 따라 1389년 왕 위에 올랐으나 3년 만인 1392년 폐위된다. 그 후 두 아들과 함께 원주에서 유배 생활을 시작한다.

공양왕은 원주 배향산 중턱에 자리를 잡았지만 얼마 안가 고성으로 유배지를 옮긴다. 고성으로 쫓겨 가서도 역모의 우려가 제기되어 유배지를 한 번 더 옮기는데 그 곳이 바로 삼척이다. 공양왕은 현재의 근덕면 궁촌리 한 민가에 머물고 있었는데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또 한 번 반역 음모론에 휘말린다. 결국 1394년 조정에서 내려온 집행관들에 의해 공양왕과 두 아들, 추종자들은 마을 뒤편 살해재에서 집단 처형된다. 삼척 처형 장소에는 공양왕 일행의 마지막 모습을 목격했을 법한 수령 1000년 남짓 되는 음나무가 아직도 서있다.

그렇다면 공양 왕릉은 어디에 있을까?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경기도 고양에 공양왕과 왕비의 능이 쌍릉 형태로 있다고 적혀있다. 공양왕 부부가 자결했고 그들을 따르던 삽살개가 끝까지 주인의 시신을 지켰다는 전설도 함께 전한다. 한편에서는 진짜 공양 왕릉은 삼척에 있다고 주장한다. 태조실록에 기록 되어 있는 공양왕일행이 죽은 장소가 삼척이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헌데 최근에는 양근 함씨 후손을 중심으로 고성 간성에 공양 왕릉이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공양왕 폐위 당시 은밀히 그를 따르던 충신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고려 왕조에서 예부시랑을 지낸 함부열이다. 그에게는 조선 왕조에서 형조전서를 지낸 함부림이라는 친형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공양왕의 최후를 위해 파견된 집행관이다. 이에 함부열은 공양왕을 살리기 위해 형 함부림에게 간청해 주군을 살리지만 앞날에 대한 걱정과 어명을 어겼다는 죄책감에 시달린 함부림이 뒤늦게 간성에 숨어있던 공양왕을 찾아내 죽이고 만다. 함부열은 왕의 시신을 남몰래 수습해 고성산 자락에 매장하고 능을 보살피는 일에 여생을 바쳤다고 한다.

셋 중 어느 것이 진짜 공양 왕릉인지는 알 수 없지만 홍인희 스토리텔러와 5명의 탐방객들은 고려 왕조의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의 흔적을 돌아보며 그의 마지막 모습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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