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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TV인문학 이메일
작성일 2016-08-09 조회수 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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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TV인문학> 4회 '동해안 남단에서 조선 왕조 창업이 움트다'
<길 위의 TV인문학> 4회 '동해안 남단에서 조선 왕조 창업이 움트다'

 삼척은 공양왕의 죽음과 함께 고려 왕조가 종언을 고한 곳이기도 하지만, 조선 왕조의 창업이 예언된 곳이기도 하다. 태조 이성계의 4대조 목조 이안사는 본향인 전주에 살며 무인집안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는 사병을 거느리며 반정부적 성격을 띤 토호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이를 눈치 챈 중앙 세력이 군사를 동원해 이안사를 치려했다. 이를 눈치 챈 이안사는 삼척 미로면으로 도피한다. 그러던 중 부모가 모두 타계하는데 세월이 흘러 아버지 이양무의 묘는 준경묘, 어머니 이씨의 묘는 영경묘라 불리게 된다. 이 중 준경묘와 관련해서는 조선개국을 예고하는 설화가 전해온다.

이안사의 하인이 장례에 쓸 나무를 하러 갔다가 노승이 어떤 묏자리를 보며 장차 왕이 나올 명당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을 듣고 주인에게 고한다. 이안사가 급히 가 사정을 말 하자 “5대 후손 중 제왕이 탄생하되, 반드시 금관과 소 100마리를 써 제를 지내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하지만 소 100마리를 구할 수 없었던 이안사는 ‘100마리 소(百牛)’와 음이 같고 글자가 비슷한 흰 소(白牛)’를 잡아 장사를 치른다. 호사가들 간에는 조선 왕조가 온갖 고난을 겪은 것은 이처럼 편법으로 묘를 썼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안사는 전주에서 자신을 치려던 산성별감이 삼척 안렴사가 되어 온다는 소식을 듣는다. 고심 끝에 고려와 원나라를 넘나들며 무인생활을 하다 생을 마감한다. 그가 삼척을 떠난 지 160년이 지나 노승의 예언대로 왕위에 오른 4대조 후손 태조 이성계는 삼척에 5대조의 묘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를 백방으로 찾는다. 묘의 행방은 세종 대에 가서 밝혀지지만 집중적인 관리는 고종 대에 이루어진다. 묘소를 성역화하며 일대에 토종 소나무 조림과 보호에도 만전을 기울인 결과 지금의 명품 소나무 숲이 탄생했다. 준경묘의 금강송 10그루는 2008년 화재로 소실된 숭례문의 대들보로 쓰였다.

조선태동의 흔적이 남아있는 준경묘와 그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이성계가 여진족의 후예라는 억지 논리를 반박하고 그의 혈연적 뿌리를 밝히는 것은 물론 우리 역사의 정체성을 재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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