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TV인문학> 6회 '마의태자는 정말 금강산으로 갔나?'
왕건에게 나라를 귀부한 것으로 알려진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과, 베옷을 입고 개골산으로 들어가 초근목피로 여생을 보냈다는 그의 아들 마의태자. 역사는 이같이 전하고 있지만, 강원도에 남아있는 그들의 흔적은 기록을 의심하게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먼저 무능한 왕으로 평가 받고 있는 경순왕은 ‘귀한 사람이 오셨다.’는 의미의 원주 귀래면에 머물며 ‘학수사’(학산사), ‘고자암’을 세우고 덕주옹주가 경순왕을 향해 절 한 고개인 ‘배재’, 개울을 건너는 왕의 옷이 젖을까 걱정되어 널다리를 놓았던 곳인 ‘너더리’ 등의 지명을 남겼다.
또 마의태자가 강원도 인제에 ‘신라소국’을 세워 대왕으로 옹립했다는 주장도 있다. 경순왕의 이름과 음이 같은 ‘김부리’라는 마을 지명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외에 옥새를 숨긴 ‘옥새바위’, 갑옷을 입고 진을 쳤던 ‘갑둔리’, 국권회복을 의미하는 ‘다물리’ 등의 지명들도 위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더불어 현재 인제군에 남아있는 ‘갑둔리 오층석탑’과 ‘김부대왕각’을 통해서는 “신라 멸망 후 최소 35년간 마의태자의 부흥 운동이 계속 되었고 설악산을 떠난 태자 무리가 만주에서 여진을 통합, 급기야 후예들이 중국 금나라·청나라를 세웠다.”는 전설도 전해 내려온다.
위의 흔적들을 홍인희 스토리텔러와 5명의 탐방객들이 직접 찾아보며,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경순왕과 마의태자의 이야기들을 상상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