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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시리즈
<평화지대.3/DLP>한반도 분단의 기원 '38선'을 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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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한국전쟁 발발 70주년 G1 기획보도 '전쟁유적지를 평화지대로' 세번째 순서입니다.

오늘은 한반도 최초의 분단선 '38선'으로 가보겠습니다.

38선은 남북의 치열한 혈전이 벌어진 전선이었는데요. 연일 패퇴하던 국군이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뒤 양양에서 처음으로 38선을 수복했습니다.

동족상잔, 비극의 역사를 간직한 38선을 원석진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터]
양양의 38평화마을.

일제 해방과 동시에 '38분단선'이 마을의 허리를 가로질렀습니다.

온 국토가 남북으로 허망히 잘려나갔지만, 한반도의 비극은 이쯤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방아쇠를 당긴 한국전쟁의 총구는 가장 먼저 38선 이남을 겨눴고,

무구한 주민들은 속절없이 희생양이 됐습니다.

[인터뷰]
"태극기도 산에 갖다 감추고, 그들이 조사하니까. 첫째는 와서 식량 약탈을. 곳간 같은 데다 노인들이 갖다 두고 이런 걸 다 찾아가고. 약탈을 막 해가도 우린 말 못하는 거지."



"한국전쟁 발발 넉 달 만에 국군은 38도선 이남 마을을 재탈환했습니다. 그리고 이곳 38선을 넘어 북쪽으로 진주했습니다."

낙동강 전선까지 밀렸던 국군이 목숨을 걸고 나아간 끝에 얻어낸 귀중한 승전고.

진군의 대가는 파릇한 청년들의 숭고한 목숨이었습니다.

[인터뷰]
"157명이었던 학도병 중대가 38선 돌파할 때는 27명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얼굴이 맨날 바뀌고 사람들이, 보충병들이."

전장에 뛰어든 열일곱 나이의 학도병을 구순의 노인으로 뒤바꿔놓은 세월.

그래도 변하지 않는 건, 총탄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끝까지 나라를 지켰다는 자부심입니다.

[인터뷰]
"양양 들어가는데 잔교리라고 있어요. 거기가 38선이죠 말해서. 거기 갔을 적에 동네 노인들이 태극기 들고 나와서 환영해주는 거, 이게 참 감동스러웠고. 3일씩 먹지도 못하고 북진하던 우리에게 떡을 주는데 아주 굉장히 (고맙고)."

국군의 양양 38도선 돌파일은 10월 1일.

38선은 대한민국 '국군의 날'의 기원이 됐고, 이제 민족의 항구적 평화를 염원하는 '출발선'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G1뉴스 원석진입니다.
원석진 기자 won@g1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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