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바다 수평선 저 멀리 오징어잡이 배의 밝은 빛이 점점이 떠 오르면 동해안에 여름이 시작됨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집어등 환하게 밝히고 밤새 잡은 오징어는 새벽이면 항구로 들어와서 강릉 시민들의 여름 입맛을 즐겁해 해 줍니다.
지금처럼 냉장고나 교통이 발달되지 않았던 옛날에는 살아있는 오징어를 회로 쳐서 초고추장에 상추와 마늘, 고추와 함께 먹는 즐거움은 6월의 동해안에서만 느낄 수 있는 행복이었습니다.
더구나 오징어를 내장을 빼지 않은 채 통째로 쪄서 먹을 수 있는 것은 오징어가 신선하지 않으면 꿈도 꿀 수 없지만, 동해안에서만 그렇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오징어는 강릉의 대표 해산물이며, 이를 한껏 공급하는 주문진이 곁에 있는 것을 강릉시민은 고맙게 여깁니다.
주문진 여름의 주인공은 오징어입니다.
주문진 바다에서는 6월부터 늦게는 11월까지 오징어가 잡힙니다. 초여름에 햇 오징어가 몰려들기 시작하면, 이곳의 어부들은 낮과 밤이 뒤바뀝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즈음부터 오징어 어군이 형성된 어장을 찾아 밤새도록 오징어잡이를 합니다. 대낮처럼 환하게 집어등을 밝히고 조업하기에 주문진의 여름 밤바다는 오징어 배들의 불빛으로 장관을 이룹니다.
이렇게 잡은 오징어가 새벽에 주문진 항구에 쏟아지면 오징어를 경매하는 사람과 싱싱한 오징어 맛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드는 관광객, 오징어 배를 따고 손질하는 아낙네들, 시장에서 오징어 써는 일만 전문으로 하는 상인 등으로 활기찬 풍경이 펼쳐집니다.
오징어는 이렇듯 중요한 어종이었기에 주문진에서는 아직도 1년에 두 번 풍어제를 지내며 오징어 풍년을 기원합니다.
오징어 먹물에 관한 이야기 등 오징어에는 우리가 미쳐 몰랐던 사실들이 있습니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 ‘오징어가 죽은 척하고 떠 있다가 날아가는 까마귀가 죽은 줄 알고 내려오면 다리로 감아서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 잡아먹는다’ 하여 오적어(烏賊魚)라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오징어라는 이름은 ‘까마귀를 잡아먹는 도적’이란 뜻에서 비롯되었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또 오징어의 먹물은 오징어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필살기로 이용하는 것인데, 멜라닌 색소로 인해 검은색을 띠고 있습니다.
먹물을 이용해 글씨를 쓸 수는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바래져서 결국은 없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성질을 이용해 지켜지지 않을 헛된 약속이나 남을 속이는 행동을 ‘오적어 묵계’라 하여 생활의 훈계로 삼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먹물을 머리 염색에도 활용하기도 하고, 파스타나 리조또와 소스에도 사용하는가 하면 과자나 아이스크림에도 널리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오징어는 고단백 저지방 저열량 식품으로 성인병을 초래할 수 있는 육류를 대체할 수 있는 훌륭한 식품입니다.
오징어 한 상자면 회, 젓갈, 찌개, 볶음 등 여러 가지 요리를 뚝딱 만들어 낼 수 있어서 반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떤 재료와도 궁합이 잘 맞아 입맛 따라 다양하게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때는 오징어 한번 실컷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오징어는 팔아야 하니 정작 가족들의 밥상에 오르는 것은 손질하고 남은 내장이었습니다. 시래기와 내장으로 깊은 맛을 낸 ‘오징어 내장국’은 먹고 살기 힘든 시절에 끼니를 잇기 위해 먹었던 아픔이 담긴 음식이기도 합니다.
또 예전에는 생것으로 먹기보다는 삶거나 순대로 먹었습니다. 또는 말려서 건오징어로 만들거나 오징어젓으로 담가 먹었습니다.
동해안 사람들은 오징어를 국수처럼 가늘게 썰어 새콤달콤한 초장 물에 섞어 먹는 물회와 오징어의 내장을 제거한 후 지역에서 생산되는 채소를 소로 넣어 쪄낸 오징어순대, 밥과 엿기름을 섞어 만든 오징어 식해, 오징어 젓갈 등 다양한 음식으로 즐깁니다.
(자료 도움: 강원학연구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