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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죽서루 재발견".. 암각글자 다수 확인 R
2015-04-11
홍서표 기자 [ hsp@g1tv.co.kr ]
[앵커]
관동팔경 가운데 제 1경으로 꼽히는 삼척 죽서루의 가치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삼척시가 최근 죽서루 주변의 암각 글자를 조사했는데, 역사적인 자료들이 대거 확인됐습니다.
홍서표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터]
삼척시와 가톨릭관동대 박물관이 지난해부터 죽서루 일대에 대한 암각자 조사를 벌였습니다.
죽서루와 오십천 주변 바위에 새겨진 글자가 더 훼손되기 전에 전수 조사를 벌인 건데, 212건의 암각자가 발견됐습니다.
그 동안 암각자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학술적 조사로 확인한 건 처음입니다.
[인터뷰]
"암각자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죽서루와 주변 오십천 일대가 뛰어난 경관, 역사문화 유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었다"
먼저 물이 괴어 깊고 푸른 못이라는 '응벽담' 등 빼어난 경관을 표현한 글귀가 눈에 들어옵니다.
활 쏘는 장소인 '사단'이란 글자와 바로 옆에는 글을 쓴 '권중청'이란 사람의 이름도 선명하게 보입니다.
덕을 보는 장소란 뜻의 '관덕지소'와 기우제를 지내던 곳으로 쓰였던 '무우대'도 희미하지만 바위에 새겨져 있습니다.
그 외에도 21살 젊은 나이에 절명한 박유 시인의 한시는 물론, 조선시대 삼척도호부 부사 등 관리 40명의 이름도 나왔습니다.
[인터뷰]
"무릉반석, 학소대, 용추폭포 등 이 일대에 암각자가 무수히 산재해 있습니다. 그래서 함께 묶어서 보는 것이 사료 가치가 있고.."
독립운동가 남궁억 선생도 이곳에 이름을 남기는 등 과거 죽서루를 찾은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바위 곳곳을 빼곡히 장식했습니다.
이 중에는 관아에 소속된 기생인 관기의 이름도 6명이나 있었습니다.
죽서루는 조선시대 관아 시설의 하나로, 주로 접대와 연회를 하던 장소입니다.
◀스탠드 업▶
"삼척 죽서루가 새롭게 조명받으면서 낚서나 훼손 등에 대한 관리도 시급해졌습니다"
G1뉴스 홍서표입니다.
관동팔경 가운데 제 1경으로 꼽히는 삼척 죽서루의 가치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삼척시가 최근 죽서루 주변의 암각 글자를 조사했는데, 역사적인 자료들이 대거 확인됐습니다.
홍서표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터]
삼척시와 가톨릭관동대 박물관이 지난해부터 죽서루 일대에 대한 암각자 조사를 벌였습니다.
죽서루와 오십천 주변 바위에 새겨진 글자가 더 훼손되기 전에 전수 조사를 벌인 건데, 212건의 암각자가 발견됐습니다.
그 동안 암각자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학술적 조사로 확인한 건 처음입니다.
[인터뷰]
"암각자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죽서루와 주변 오십천 일대가 뛰어난 경관, 역사문화 유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었다"
먼저 물이 괴어 깊고 푸른 못이라는 '응벽담' 등 빼어난 경관을 표현한 글귀가 눈에 들어옵니다.
활 쏘는 장소인 '사단'이란 글자와 바로 옆에는 글을 쓴 '권중청'이란 사람의 이름도 선명하게 보입니다.
덕을 보는 장소란 뜻의 '관덕지소'와 기우제를 지내던 곳으로 쓰였던 '무우대'도 희미하지만 바위에 새겨져 있습니다.
그 외에도 21살 젊은 나이에 절명한 박유 시인의 한시는 물론, 조선시대 삼척도호부 부사 등 관리 40명의 이름도 나왔습니다.
[인터뷰]
"무릉반석, 학소대, 용추폭포 등 이 일대에 암각자가 무수히 산재해 있습니다. 그래서 함께 묶어서 보는 것이 사료 가치가 있고.."
독립운동가 남궁억 선생도 이곳에 이름을 남기는 등 과거 죽서루를 찾은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바위 곳곳을 빼곡히 장식했습니다.
이 중에는 관아에 소속된 기생인 관기의 이름도 6명이나 있었습니다.
죽서루는 조선시대 관아 시설의 하나로, 주로 접대와 연회를 하던 장소입니다.
◀스탠드 업▶
"삼척 죽서루가 새롭게 조명받으면서 낚서나 훼손 등에 대한 관리도 시급해졌습니다"
G1뉴스 홍서표입니다.
홍서표 기자 hsp@g1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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