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 회
2015-03-14
G1방송
키보드 단축키 안내
1905년 경의선 임진강철교로 완공 후
1943년 일제강점기 말 2개의 교량으로 건설된 다리는
6‧25정전협정 당시 자유의 다리로 명명된다.
53년 포로교환 당시
국군 포로 12,773명이 다리를 통해 송환되는 것을 시작으로
68년 푸에블로호 납북 이후 선원들의 귀환,
70년 KAL기 납북자 39명 귀환의 장소로,
71년~72년 7.4 남북공동성명 남북 회담대표들이 오가는 화합의 통로로
한국 현대사의 큰 사건들의 현장이 된 자유의 다리.
일제강점기 말 건설되어, 한국전쟁을 거쳐 비무장지대 속
분단 역사의 상징으로 남아있는 ‘자유의 다리’를 역사적 흐름에 따라
소개하며 당시 분위기와 현재 남아있는 전쟁의 유산의 가치를 살펴본다.
1943년 일제강점기 말 2개의 교량으로 건설된 다리는
6‧25정전협정 당시 자유의 다리로 명명된다.
53년 포로교환 당시
국군 포로 12,773명이 다리를 통해 송환되는 것을 시작으로
68년 푸에블로호 납북 이후 선원들의 귀환,
70년 KAL기 납북자 39명 귀환의 장소로,
71년~72년 7.4 남북공동성명 남북 회담대표들이 오가는 화합의 통로로
한국 현대사의 큰 사건들의 현장이 된 자유의 다리.
일제강점기 말 건설되어, 한국전쟁을 거쳐 비무장지대 속
분단 역사의 상징으로 남아있는 ‘자유의 다리’를 역사적 흐름에 따라
소개하며 당시 분위기와 현재 남아있는 전쟁의 유산의 가치를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