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 회
2016-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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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국가기록원이 한국전쟁 당시 군사 극비문서를 공개했다.
대한민국 정부가 군사작전지도와 함께 전달한 구두하달 지시문이었다.
‘전투행위 중지에 불응하라’는 내용이었다..
전쟁 초기, 이승만은 미군과 대전협정을 맺었음에도 불구하고
“38도선을 돌파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내가 이 나라 최고사령관이다. 나의 명령에 따라 진군하라.”
-이승만대통령 친필 북진명령서
이승만의 북진 명령에 따라 1950년 10월 1일 오전 5시를 기해
한국군 제3사단 23연대는 38선을 돌파했다.
그리고 이승만은 1953년 6월 정전협정을 눈앞에 둔 시점,
다시 한 번 1950년 10월의 기록을 재현하려고 했다.
1950년 38선 돌파가 없었다면 북한 땅이 됐을 지도 모르는 강원도 일대..
당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DMZ스토리 220부 극비문서, 양양군 수복의 비밀]
정전협정 당시 군사 극비문서를 통해 대한민국의 통일에 대한 염원과 수복된 양양군의 비화를 살펴보자.
대한민국 정부가 군사작전지도와 함께 전달한 구두하달 지시문이었다.
‘전투행위 중지에 불응하라’는 내용이었다..
전쟁 초기, 이승만은 미군과 대전협정을 맺었음에도 불구하고
“38도선을 돌파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내가 이 나라 최고사령관이다. 나의 명령에 따라 진군하라.”
-이승만대통령 친필 북진명령서
이승만의 북진 명령에 따라 1950년 10월 1일 오전 5시를 기해
한국군 제3사단 23연대는 38선을 돌파했다.
그리고 이승만은 1953년 6월 정전협정을 눈앞에 둔 시점,
다시 한 번 1950년 10월의 기록을 재현하려고 했다.
1950년 38선 돌파가 없었다면 북한 땅이 됐을 지도 모르는 강원도 일대..
당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DMZ스토리 220부 극비문서, 양양군 수복의 비밀]
정전협정 당시 군사 극비문서를 통해 대한민국의 통일에 대한 염원과 수복된 양양군의 비화를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