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회
2021-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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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강원도 철원 지역의 발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중의 하나가 상수도다.
철원 수도국 터 급수탑, 일명 ‘수도국지’는 일제 강점기인 1936년 강원도 최초로 건설된 상수도 시설로
옛 철원읍 시가지에서 경기도 연천 방향으로 넘어가는 새우젓고개 정상 부근에 있다.
새우젓고개는 옛날 한강에서 임진강, 한탄강 유역을 따라 배로 운반된 새우젓을
철원읍 장 등에서 팔기위해 지고 가던 상인들이 이 고개에서 쉬어가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수도국지’에서 남쪽 방향 금학산 골짜기를 안양골이라 부르는데,
안양골 안에는 일제 강점기 상수도 물을 확보하기 위하여 석축을 쌓아 만든 안양골 취수댐이 있다.
당시 수도국은 이곳에 모인 물을 끌어와 저장하였다가 시내의 각 가정에 보냈다.
(1937년 발행된『철원읍지』에 의하면 급수인구는 500가구 2500명, 1일 급수량은 1,500㎥)
일제 강점기에 사용되었던 이 상수도용 소형 댐은 100여년 세월에도 별 손상 없이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그러나 광복과 6·25전쟁을 겪으면서,
잠시나마 삶의 고단함을 내려놓고 한숨 돌리던 상인들의 쉼터이자
남쪽으로 통하는 주민들의 이동로였던 ‘새우젓고개’와
철원읍의 경제 및 사회적 위상이 대단했음을 보여주는 자부심이었던 ‘수도국지’는
이제 대한민국의 아픈 현대사를 상징하는 곳이 되었다.
‘새우젓고개’
6·25전쟁 때는 고개를 통과하던 피난민들이 인민군의 협공을 받아 몰살당하였던 곳.
‘수도국지’
6·25전쟁 당시 국군이 북진하자 쫓기던 인민군들이
철원 노동당사와 내무서에 감금되어 있던 정치범들과
반공정신이 투철한 애국 인사 약 300명을 끌고와서 총살시키거나 생매장한 학살의 현장.
아직도 전쟁 당시의 총탄자국과 폭파된 흔적이 시설물 곳곳에 남아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을 학살했던 곳으로만 알려져 있던 ‘수도국지’가
2013년, 한 시인에 의해 북한 인민군 정보국 지하 감옥으로도 이용됐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는데...
에서는 70여 년 전, 가장 치열했던 전장의 한복판에서
역사의 소용돌이에 떠밀려 이념의 분계선이 되어버린 비운의 유산들을 만나본다.
철원 수도국 터 급수탑, 일명 ‘수도국지’는 일제 강점기인 1936년 강원도 최초로 건설된 상수도 시설로
옛 철원읍 시가지에서 경기도 연천 방향으로 넘어가는 새우젓고개 정상 부근에 있다.
새우젓고개는 옛날 한강에서 임진강, 한탄강 유역을 따라 배로 운반된 새우젓을
철원읍 장 등에서 팔기위해 지고 가던 상인들이 이 고개에서 쉬어가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수도국지’에서 남쪽 방향 금학산 골짜기를 안양골이라 부르는데,
안양골 안에는 일제 강점기 상수도 물을 확보하기 위하여 석축을 쌓아 만든 안양골 취수댐이 있다.
당시 수도국은 이곳에 모인 물을 끌어와 저장하였다가 시내의 각 가정에 보냈다.
(1937년 발행된『철원읍지』에 의하면 급수인구는 500가구 2500명, 1일 급수량은 1,500㎥)
일제 강점기에 사용되었던 이 상수도용 소형 댐은 100여년 세월에도 별 손상 없이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그러나 광복과 6·25전쟁을 겪으면서,
잠시나마 삶의 고단함을 내려놓고 한숨 돌리던 상인들의 쉼터이자
남쪽으로 통하는 주민들의 이동로였던 ‘새우젓고개’와
철원읍의 경제 및 사회적 위상이 대단했음을 보여주는 자부심이었던 ‘수도국지’는
이제 대한민국의 아픈 현대사를 상징하는 곳이 되었다.
‘새우젓고개’
6·25전쟁 때는 고개를 통과하던 피난민들이 인민군의 협공을 받아 몰살당하였던 곳.
‘수도국지’
6·25전쟁 당시 국군이 북진하자 쫓기던 인민군들이
철원 노동당사와 내무서에 감금되어 있던 정치범들과
반공정신이 투철한 애국 인사 약 300명을 끌고와서 총살시키거나 생매장한 학살의 현장.
아직도 전쟁 당시의 총탄자국과 폭파된 흔적이 시설물 곳곳에 남아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을 학살했던 곳으로만 알려져 있던 ‘수도국지’가
2013년, 한 시인에 의해 북한 인민군 정보국 지하 감옥으로도 이용됐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는데...
역사의 소용돌이에 떠밀려 이념의 분계선이 되어버린 비운의 유산들을 만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