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해안 깊은 바닷속에서 고요와 적막을 벗 삼아 해산물을 채취하는 이, 바로 ‘머구리’입니다.
‘머구리’는 잠수부를 일컫는 옛말로 대개 얕은 바다를 잠수하는 해녀에 비해 머구리들은 해녀들보다 더 깊은 곳에서도 작업이 가능합니다.
바닷속 깊은 곳에서 작업하는 머구리에 대해 ‘하늘 못 보고, 해도 못 보는 직업’이라고 하며, ‘저승에서 돈 벌어 이승에서 쓴다’라고도 했습니다.
머구리는 저 시퍼런 바다 밑에서 목숨을 걸고 물일을 하므로 물밑이 저승이고 뭍이 이승인 셈입니다.
머구리의 일 또한 해녀 못지않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노동이어서 새로이 머구리를 하겠다고 지원하는 사람도 적어서 이제는 점차 사라져 가고 단지 몇 몇의 소수만이 남아 그 명맥을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강릉시 사천항에 머구리의 상징물이 있었습니다. 입을 벌리고 있는 상어와 그 위에서 작살을 들고 뭔가를 잡으러 준비하고 있는 머구리의 모습. 이제는 기억 속으로 사라진 이야기가 됐습니다. 이제는 이 조형물이 낡고 위험해 철거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습니다.
머구리는 홀로 작업할 수 없습니다. 대개 머구리배에 선장과 줄잡이가 있고 바다 속에는 머구리 세 명 정도가 한 팀을 이뤄 작업합니다.
머구리배는 잠수부가 수중에 있는 수산 동식물을 포획 또는 채취하는 어선인데, 동해안에서는 이를 ‘잠수기’ 또는 ‘자원 관리선’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머구리배는 선체 밑이 노랗게 채색되어 흰색의 일반 어선과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바닷속에서 머구리들이 작업하려면 공기공급이 필수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배 위에서 산소를 공급해 주는 장치가 있고 잠수병 예방을 위한 고압산소가 필수이며, 이를 공급하기 위한 공기 공급줄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머구리배에는 이를 위한 장치가 탑재돼 있습니다. 또 공기 외에도 머구리가 물밑에서 작업을 하려면 많은 장비가 필요합니다.
먼저 바다 속에서 머무르기 위해서는 무거운 장비가 필요하여 우주인 헬멧 같은 잠수모자(가부도)와 묵직한 납덩이(노도)를 달고 커다란 쇠신을 신어야 물 밑으로 가라앉을 수 있으므로 50kg 이상의 무게가 있어야 하며, 바닷 속 추위를 견디려면 한여름에도 털 내의를 2~3겹은 껴입어야 합니다.
그래서 머구리가 장비를 갖춘 모습은 무쇠 탈을 쓴 거인 또는 우주인 같기도 합니다.
예전과 달라진 점은 머구리배와 연결된 공기줄 끝에 스쿠버들이 사용하는 호흡기가 달려있어서 더 이상 우주인을 연상하는 헬멧이 필요 없다는 사실입니다.
머구리의 바다 속 작업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머구리들은 물살의 흐름에 따라 상황을 파악하거나 바위에 들어오는 햇빛을 보고 방향 동서남북을 파악하여 작업을 합니다.
예전에는 머구리들이 모래밭에서 양미리를 잡았는데, 물 밑 모래사장에 숨어있는 습성이 있는 양미리를 잡기 위해서 바다 밑 모래 위에 그물을 펼쳐놓고 머구리들이 발로 쿵쿵 자극하면 놀라 양미리가 모래밭에서 올라와 그물에 걸리게 됩니다.
이렇게 잡으면 너무 많은 양이 잡히므로 남획을 방지하기 위해 지금은 머구리 대신 기계가 음파로 모래를 진동시켜 잡습니다.
양미리 외에 머구리들이 작업하는 해산물은 주로 해삼과 멍게, 성게와 미역 등입니다. 예전에는 강문에서의 미역 채취는 주로 머구리가 했고 일부 해녀들이 동참하여 미역을 채취했습니다.
미역을 채취하는 것을 ‘미역 바리’라 합니다. 성게알은 한때 비싼 값으로 일본에 수출돼 머구리배에 큰 돈을 벌어다 주었고 값나가는 대문어를 포획하는 것은 커다란 행운입니다.
머구리들은 보통 5시 반 정도에 나가 물질을 하며 하루에 많아야 4시간 정도 작업을 합니다.
바람 불고 파도가 높고 비가 오면 작업하러 나갈 수 없어, 일을 할 수 있는 날은 평균 잡아 일년에 반 정도만 가능하다고 합니다.
한 번 물속에 들어가면 2~3시간, 길면 5~6시간도 하지만 물속에 오래 있을수록 잠수병의 위험이 커서 요즘엔 1시간 간격으로 작업하며 하루에 4시간 정도만 한다고 합니다.
잠수 시간이 길수록 혈액 내에 질소가 많아져서 잠수병에 걸릴 확률이 크기 때문입니다.
잠수가 길어질수록 천천히 뭍으로 올라와야만 잠수병에 걸리지 않는데 강원도 머구리들은 시간이 아까워서 고압산소를 많이 들이켜서 그 시간을 번다고 합니다. 위험을 감수하는 이 방법은 해외에서는 볼 수 없는 이 지역만의 문화이기도 합니다.
머구리들은 대개 작업하러 나갈 때는 빈속으로 또는 간단한 아침을 먹습니다.
많은 양의 식사는 위가 거북하거나 용변의 곤란함 때문에 바다 속 작업을 어렵게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전복처럼 질긴 것, 회와 같은 날 것 등은 먹지 않고 소화가 잘 되게 익힌 것만을 먹는다고 합니다. 본격적인 식사는 작업이 끝난 후에 먹습니다. 식사는 일반적인 가정 식사를 하며 특별히 챙겨 먹는 것은 없습니다.
머구리들은 작업하러 가기 전 닭이나 보신탕은 대개 먹지 않습니다.
이는 생명이 위험한 일을 하는 직업을 고려해 생명을 해치는 일은 가능한 한 하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일 겁니다.
또 머구리들의 금기사항이 있는데, 무거운 것을 들려고 힘을 주면 질소가 더 빨리 확산되기 때문에 잠수병 예방을 위해서는 무거운 것을 들지 않으려고 합니다. 또한 혹시라도 멍이 들면 질소가 확산되기 쉬워 상처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머구리들의 일상에는 언제나 바다가 있으며, 때로는 밝은 햇살 비치는 곳에서 또 때로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작업하게 됩니다.
동해안의 마지막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머구리들이 그 수는 많지 않겠지만 오늘도 그 속에서 꿈과 희망을 채취하고 있습니다.
(자료 도움: 강원학연구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