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도 동해안의 시장에 가면 배 쪽을 위로 오게 뒤집어 놓은 동그랗고 검은 생선을 볼 수 있습니다.
우둘투둘한 배에 둥그런 빨판이 있는, 마치 복어처럼 동글동글하게 생긴 물고기입니다.
동그란 머리와 작은 꼬리가 마치 올챙이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못생겨도 너무 못생긴 이 생선의 표준말은 ‘뚝지’입니다.
동해안에서는 ‘도치’, 심퉁 맞게 생겼다고 해서 ‘심퉁이’, 또는 ‘물텀벙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생긴 것과는 달리 맛은 너무 좋아 동해안의 스타 생선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도치는 다른 생선과는 달리 아래턱과 배 사이에 배지느러미가 변하여 생긴 흡반이라는 빨판을 갖고 있습니다. 빨판이 있어 파도에 휩싸이지 않고 바위에 붙어있을 수 있으며 산란기에는 알을 지키기도 합니다. 또 이 빨판으로 암수 구별이 가능한데 수놈은 크고 암놈은 작습니다.
암반에 붙어서 살기에 바위와 비슷한 보호색을 띄고 있어 그물에 걸리는 도치의 색과 모양은 제각각입니다.
도치를 잡으려면 겨울 바다 추위와 맞서야 합니다. 그물을 당길 때 따뜻한 물을 준비했다가 손을 담가가며 추위를 이겨냅니다.
남한의 가장 북쪽 마을인 명파마을 앞바다, 속초 장사항 등에서 주로 새벽 조업으로 도치를 잡습니다.
도치는 겨울 한 철에 강원도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생선이지만, 발로 차고 다닐 정도로 흔했었는데 잘 먹지 않았던 생선이었습니다.
그물에 우연히 걸리는 생선이었고, 잡으면 못생겼다고 버려지던 물고기였습니다.
하지만 고소한 맛과 특별한 질감으로 이제는 개체수가 급격히 준 명태를 대신하여 동해안을 대표하는 신흥 겨울의 별미로 부상했습니다. 동해안에 와야만 먹을 수 있는 효자 생선이 된 겁니다.
도치는 비린내가 없고 쫄깃하면서 꼬들거리는 식감이 일품인 생선입니다.
1980년대만 해도 고성 일부 지역에서만 먹던 생선인데, 숙회로 먹거나 말려서 찜으로 먹는 정도였지만 지금은 다양하게 먹고 있습니다.
수컷은 살짝 데쳐서 숙회로, 암컷은 알탕으로 먹으면 최고입니다.
한편, 강원 영동 북부에서는 오래전부터 제사상에 도치를 올렸습니다. 제사에 올릴 때, 도치알을 네모난 틀에 넣어서 두부처럼 만들어 올리기도 하고, 삶아서 말렸다가 쪄서 올리기도 합니다.
제사 음식에는 ‘치’자가 붙은 생선은 사용하지 않는데, 강릉에서 도치를 ‘심어’로 이름을 바꾸어 제사상에 올립니다. 이는 태풍이 심한 상황일 때도 제사는 드려야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도치는 먹기 전에 먼저 껍질부터 벗겨야 합니다. 끓는 물에 넣으면 껍질이 하얗게 변하면서 벗겨집니다. 이것을 문질러 얇은 점막층을 벗겨냅니다. 그러면 뽀득하고 탱탱한 살결이 드러납니다. 이 상태에서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서 손질하거나 꾸덕하게 말려서 먹습니다.
도치를 회로 먹을 때는 ‘숙회’로 먹습니다. 꼬리부터 얇게 썬 후 물을 끓여서 한번 넣었다가 바로 찬물에 넣은 후 초장에 찍어 먹습니다.
도치찜은 도치를 데친 후 알과 내장을 손질하여 꾸덕하게 말려두었다가 찜 솥에 쪄내면 됩니다. 쪄낸 도치를 툭툭 잘라놓고 간장에 고춧가루와 파, 마늘 양념해 만든 양념장을 찍어 먹습니다.
그런데 도치 요리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 해도 알입니다. 알은 알집이 있어 그대로 넣으면 알이 퍼지지 않기 때문에 알집을 제거하고 알만 사용합니다. 김치를 썰어 넣고 알을 쏟아붓고 끓이면 칼칼하고 시원한 ‘도치 알탕’이 만들어집니다.
얼큰한 국물에 오독오독 터지는 알 맛이 일품입니다. 가정에서는 김치찌개에 넣어 먹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고 요즘 식당에서는 김치를 넣고 만든 도치 알탕을 많이 먹습니다.
(자료 도움: 강원학연구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