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면 속을 시원하게 해 줄 냉면 한그릇이 생각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쫄깃한 면발에 시원한 육수를 한껏 들이키면, 등에서부터 뒷통수를 타고 정수리까지 찌르는 찌릿함이 더위를 잊게 해 줍니다.
사실 지금 냉면은 여름철 음식이라기 보다는 일년 내내 즐기는 사철음식입니다.
또 냉면만 찾는 마니아들이 있을 정도로 매력이 있는 음식입니다.
그런데 냉면은 원래 겨울에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습니다.
냉장 시설이 없었던 과거에는 더운 여름날 먹는 냉면은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실제로 홍석모((1781-1857)가 지은 ‘동국세시기’에 보면 음력 11월에 먹는 음식으로 나옵니다. 그야말로 이냉치냉이었던 겁니다.
요즘은 냉면하면 함흥냉면과 평양냉면이 떠 올립니다.
보통 평양냉면은 물냉면, 함흥냉면은 비빔냉면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평양과 함흥 두곳 모두 쉬이 가볼 수 없는 곳이 되었지만, 속초에 가면 함흥냉면의 맛을 이어가는 집이 있습니다. 그곳이 바로 ‘함흥냉면옥’입니다.
함흥 출신의 故 이섭봉(1919-1992) 사장은 1951년 1.4 후퇴 때 부산으로 피난을 가면서 처음으로 남쪽으로 내려왔습니다.
이후 고향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을 요량으로 다시 속초까지 올라와서 움막을 짓고 나무를 대충 깎아서 만든 식탁과 의자를 놓고 냉면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함흥에서 냉면집 주방장으로 있던 그의 매형이 주방을 맡았습니다.
정통 함흥냉면집 ‘함흥냉면옥’의 시작이 된 겁니다.
1950년대 말까지는 이일 저일 병행하면서 장사를 하다 말다 했지만, 60년대 부터는 본격적으로 장사를 시작하면서 식당 운영이 바빠지게 됐습니다.
초대 사장은 함흥의 유명한 체육인이자 사이클 선수였습니다.
장사를 시작하면서 그 경력을 십분 발휘했습니다.
근대 초기 신문이나 잡지를 보면 냉면 배달과 관련된 일화들이 꽤나 많이 등장합니다.
대부분 평양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것이지만 동서로 정 반대편에 있던 함흥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배달 어플리케이션이 나오기 전에는 냉면을 배달하는 집은 거의 없었지만, 냉면은 애초부터 배달음식이었습니다.
‘함흥냉면옥’은 출발부터 배달을 시작했고, 지금도 배달을 하고 있습니다.
가게 벽에는 초대 이섭봉 사장이 자전거를 타고 배달을 하는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함흥냉면은 홍어나 가자미 등 생선을 매콤하게 무친 회를 고명으로 얹어 면과 함께 비벼 먹는 것이 특징입니다.
‘함흥냉면옥’은 홍어나 가자미 대신 명태를 고명으로 해 소위 대박을 냈습니다.
당시가 80년대 초반이었습니다.
지금은 명태를 고명으로 주는 집이 많지만 그 시초는 바로 ‘함흥냉면옥’이었습니다.
함흥냉면의 틀을 넘어 속초식 함흥냉면이 탄생했던 겁니다.
초대 이섭봉 사장이 작고하면서, 아들 이문규 사장이 가업을 이어나갔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에게 일을 배웠던 주방장들은 처음에는 아들에게 비법을 잘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문규 사장은 본인이 사장이었지만, 주방 보조를 자처했습니다.
어깨너머로 배우고 물건 주문량을 계산해서 재료의 비율을 깨우쳤습니다.
그렇게 7년의 세월을 보낸 뒤에야 주방을 맡을 수 있게 됐습니다.
이제 아들 사장인 이문규 사장이 가게를 이어받은 지 30년 가까이 됐습니다.
2대 이문규 사장은 돈 버는 것보다는 전통을 이어가는 것에 사업 철학을 두고 있을 만큼 가업을 잇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자료 도움: 강원학연구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