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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강원의 노포(老鋪) 이야기> ⑥ 대룡산막국수/前 교동막국수 (춘천 1954년 개업)

 막국수가 어디서부터 비롯된 말인가에 대해서는 ‘썰(說)’이 분분합니다.


 원래 좋지 않은 땅에서도 잘 자라는 메밀을 많이 재배하던 강원도의 화전민들이 끼니를 때우려고 마구 뽑아 거칠게 먹었다고 해서 막국수가 되었다는 얘기, 을미사변을 계기로 의병을 일으킨 춘천 유생들이 일본군을 피해 산 속으로 가 화전을 일구고 연명하다가 이후에 메밀을 들고 나오면서 춘천에 막국수가 나왔다는 얘기, 한국 전쟁 때 피난 온 이북 사람들이 고향의 냉면 맛이 그리워서 대신 만들어 먹었는데 젓가락만 대도 뚝뚝 잘 끊어지는 메밀 면을 숟가락으로 마구 먹는 걸 옆에서 보고서는 “막 먹네” 하다가 막국수가 되었다는 얘기, 혹은 이러한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 아니라 막걸리와 비슷하게 면을 막바로 뽑아서 먹는다는 의미에서 막국수가 되었다는 얘기 등 다양합니다.


 국어사전에서는 막국수를 뭐라 정의하고 있을까?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겉껍질만 벗겨 낸 거친 메밀가루로 굵게 뽑아 만든 거무스름한 빛깔의 국수’라고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거무스름한 막국수 면을 떠올리는 것과 같습니다.


 메밀 껍질이 검은 색을 띠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거무스름한 빛깔’이 되는 것은 메밀의 껍질을 완전히 벗기지 않았기, 아니 못했기 때문입니다.


 메밀을 도정할 수 있는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껍질을 완전히 벗길 수 없었고 거무스름한 면이 나올 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


 거무스름한 막국수 면을 개선하기 위해 메밀을 연구하고 또 연구한, 종국에는 직접 제분공장을 만들어 껍질이 하나도 섞이지 않은 100% 메밀을 사용한 하얀색 막국수를 처음 만든 사람이 ‘대룡산 막국수’의 2대 사장인 김진호 대표입니다.


 도정 뿐만 아니라 메밀 새싹에도 주목해서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대부분의 메뉴에 메밀 새싹이 함께 나오는데, 입안에 퍼지는 알싸하면서도 은은한 향이 입맛을 돋웁니다.


 다른 막국수 집에서는 볼 수 없는 메밀 새싹 무침 또한 ‘대룡산막국수’의 시그니처 음식입니다.


 김진호 사장의 지독한 메밀 사랑은 ‘대룡산막국수’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대룡산막국수’는 김진호 사장의 모친 故 강길순 할머니가 6.25 전쟁 직후인 1954년 춘천 교동에서 ‘교동막국수’라는 이름으로 가게를 처음 열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홀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할머니는 단 하루도 쉬지 않고 가게를 열었습니다.


 손맛 때문인지 가게는 곧잘 됐습니다. 장사가 잘 되자 할머니는 손님들이 너무나 고마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손님들에게 조금이라도 보답을 하고자 막국수에 ‘민찌(할머니식 표현)’를 넣기 시작했습니다.


 민찌는 잘게 간 돼지고기를 가리키는데, 고마운 마음에 고기 맛이라도 보게 하려는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이 ‘민찌’가 들어간 막국수는 ‘대룡산막국수’의 트레이드마크가 됐습니다.


 할머니의 마음이 통했던 것인지 장사는 그 전보다 잘 됐습니다.


 그 덕에 4남매를 무사히 잘 키웠고, 장성한 자식들은 산업화 바람이 불면서 서울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너무 어려서 가지 못했던 막내가 나중에 가게를 물려받게 되는데, 그 막내가 김진호 사장이었습니다.


 새로 건물을 지어 자리를 옮기면서 이때부터 상호를 ‘교동막국수’에서 ‘대룡산막국수’로 바꿨습니다.


 ‘대룡산막국수’는 2대 사장의 아들인 김정현씨가 도맡아 운영하고 있습니다.


 3대 사장은 메밀의 6차 산업화에 나섰습니다.


 온라인을 통한 구매대행업에 종사했던 경험을 살려 메밀을 재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가공하고 직접 판매하는 것까지 이뤄지는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자료 도움: 강원학연구센터)


이종우 기자 jongdal@g1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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