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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오전 7시 10분
앵커 김민곤
<사북.3> '구타에, 성적 가혹행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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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 1980년 사북 항쟁의 진실 규명과 피해 회복을 위해 G1방송과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마련한연속 기획 보도.

이번에는 항쟁 당시 계엄군의 반인륜적 행태에 대한 피해자들의 처절한 증언을 전합니다.

먼저 구타와 고문, 성적 가혹행위까지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그날의 끔찍했던 기억을 최돈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터]
1980년 4월, 정선 사북.

계엄군에게 끌려간 건 광부들 만이 아니었습니다.

◀SYN / 음성변조▶
"애들 다 목욕시켜 눕혀놓고 큰 아들 저녁 먹여놓고 남편 술 따라주고 술잔 들려고 하는데 목을 잡고 야구 방망이로 머리를 때리고 아래쪽을 때리고 소리 지르면 죽인다고 그러고 입을 틀어막고. 신을 신었어 뭘 신었어.."

[리포터]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간 그들을 기다린 건 무자비한 폭행이었습니다.

◀SYN / 음성변조▶
"꿇어 앉아서 보면 양쪽에 군화 신은 시퍼런 옷 입은 군인들이 둘이서 그냥 밟아버려. 죽는다고 몸부림치면 살짝 들었다가 또다시 밟고 다시 밟고.."

[리포터]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존엄도 없었습니다.

◀SYN / 음성변조▶
"가슴을 얼마나 비틀었는지 가슴이 얼근얼근해. 이만큼 속옷이 내려가면 이 사람도 만져보고 저 사람도 만져보고 개지랄을 했는데 뭘.."

[리포터]
극한의 성적 모멸감에도 끝내 포기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건 가족 때문이었습니다.

◀SYN / 음성변조▶
"보고 만지고 하는 건 까짓 것 문제도 아니야 어떡하든 내가 살아서 자식들이라도 보고 남편이라도 보고 죽어야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억지로 버텼는데.."

[리포터]
당시 군인과 경찰에 잡혀간 사북지역 주민은 200명 정도.

이중 여성도 14명이 포함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부녀회장 이유로, 누구를 안다는 이유만으로 끌려가 가혹행위에 시달렸고,

일부 피해자들은 이미 사망하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수백장되는 사진 여기서 얼굴 하나 찾아내라, 찾아내라. 매 맞는 아주머니들은 찾아내면 매 안 맞는다 안 맞는다 하니까 매 안 맞으려고 한 방이라도 덜 맞으려고 이 사람 봤다, 이 사람 봤다, 얼굴 보고 여기 와서 잡아가고.."

[리포터]
계엄군의 가혹행위는 성별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SYN / 음성대역▶
/"유치장 경찰이 남자들에게 성기를 내놓게 하고 가느다란 작대기로 성기를 때리고, '제일 물건이 큰 놈에게 담배 한 모금 준다.'그러면서 모욕을 주었습니다."/



"사북항쟁과 관련해 진실화해위원회가 지난 2008년 한 차례 조사보고서를 발간했지만,

당시 구속 기소돼 재판까지 받은 피해자 중심으로 작성됐습니다.

더 늦기 전에 충분한 피해조사가 시급한 이윱니다.
G1뉴스 최돈희입니다."

*본 보도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
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최돈희 기자 tweetism@g1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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